흑심
서점에 가면 으레 들르는 곳이 있다.
문구를 파는 곳
난 흑심을 품은 연필을 산다.
오늘은 가는 흑심을 품은 연필 한 자루를 샀다.
곧고 매끈한 그 모습에 반했다.
연필깍이 구멍에 넣고 살살 돌린다.
사르륵 사르륵 소리를 내며 뽀얀 속살을 드러낸다.
이내 까만 흑심이 뾰족해 지면서 연필로 거듭난다.
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그 단아함에 흥분한다.
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촉감
그 끝이 부러질세라 살포시 감아 쓴다.
어느새 연필의 흑심도 내 흑심도 무뎌진다.
무뎌진 흑심만큼 내 흑심도 토해진 듯
백지에 가득한 흑심의 잔해에 묘한 희열을 느낀다.
난 오늘도 연필을 산다.
그리고 연필을 깎는다.
건조한 기계의 자판을 거부하고 연필을 잡는다.
사랑하는 여인과 하룻밤을 치르듯
흑심에 내 흑심을 담아 거침없이 토해낸다.



